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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살인사건 - 사실은 버거킹 살인사건 홍익대 고 조중필님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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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살인사건 - 사실은 버거킹 살인사건 홍익대 고 조중필님을 기리며

 

사건 = 1997년 4월 3일 밤 11시경
서울 용산구 이태원 버거킹 햄버거 가게안 화장실.
당시 버거킹은 현재 2015년 없어진 상태.

 

 

고 조중필 씨와 여자친구는 화장실이 급해 들린 버거킹에서
여자친구는 감자튀김과 콜라를 주문하고 조중필씨는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여자친구가 자리에 앉아 감자튀김 두어개를
집어먹고 집에 전화를 걸어 어머님과이야기를 나눈 1분여정도
화장실에 간 조중필씨가 나오지 않아 의아해 하던 여자친구는
화장실에서 두손으로 입을 가리고 나오는 사람을 보게되고
유혈이 낭자한 조중필씨의 사체를 보게 된다. 9군데에
걸쳐 목 가슴 배 등등 난자를 당해 피가 홍수를 이루었고
이미 조중필씨는 사망한 상태였다.

 

 

 

 

 

 

 

 

 

 

 

 

 

 

 

이후 미 CID는 이태원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아더 존  패터슨을 사건 다음날

여자친구의 제보로 붙잡아 수사를 하고 한국 검찰에 신병을 인도한다. 하지만

패터슨과 화장실에 같이 있던 에드워드 리 역시 살인혐의로 검찰에 자수를

하고 이후부터 지루한 서로 살인자이고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는 공방을 이어간다. 

 

 

 

 

 

 

조중필 사건에서 살인자가 처벌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불공정하다는 지적이 많았던 한미행정협정(SOFA) 때문이라 지적하기도 한다.

 

 

 

 

 


한 방에 세 명이 있고, 한명이 죽었다. 살아있는 두명은 서로 상대방이 죽였다고 말을 한다. 그리고 이런 희대의 웃기지도 않은 공방은 서로가 살인죄에 대해서는 뚜렷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게 되어 무죄가 된다. 그 중 아더 존 패터슨은 한국 검찰이 신병을 제때 확보하지 못하고 출국금지 조치도 실수로 연장하지 않아 유유히 미국으로 떠났고, 다시는 한국에서 그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사건이 벌어진97년 이후 2015년 지금까지.

 

 

 

 

 

 

그런데.... 더욱 문제는 CID는 수사를 하지 않았다. 진술서만 받았다는 사실이다.

 

 

 

 


용의자신분인 패터슨에 대한 출국금지 연장을 제때 하지않아서 외국으로 도주

그리고 그는 한국 검찰이 했던 실수 그대로 인신보호청원을 제 때 신청하지

않아 한국으로 송환되어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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